ep.2 된거야 안된거야?!
"너 이거 할 수 있겠냐?"
내 사수는 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물어왔다.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요~ 헤헤"
공장을 지나 지금의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가지게 해준 첫 번째 회사에서 학원을 수료했다는 이유로 어려운? 미션을 주었다.
영업부에 최이사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사람은 좋지만 실적이 따르지 않아 여러모로 평가가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낙동강 오리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센스야 요번에 OOO에서 윈도우 클러스터 구축 사업이 들어왔어. 너 학원에서 윈도우 클러스터 배웠다고 했지?"
이게 무슨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가 쿵짝쿵짝~ 네 박자 속에~ 같은 소리인지?
"저 학원 졸업한 지 언 1년이 다 되어가고, 실제 업무에서 해본 적 없는데요?"
해당 업무가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일념으로 못하겠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겼지만 우리 끈 떨어진 이사님은 일절 신경 쓰지 않은 듯 이야기하셨다.
"그게 요번에 금액도 금액이고, 마땅히 지원요청 할 업체나 사람을 못 구하고 있어서.... 일단 내가 최대한 원하는 환경 다 만들어 줄 테니 시도는 해봐~ 내일 장비 들어오기로 했거든~ 오면 오픈해도 된다는 허락받았으니 사진 찍고 한번 테스트해 봐~ 알.았.지.?"
마지막에 "알았지"에 힘주며 이야기하시는 건 제 착각이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사님 ㅡㅡ
뭐 결국 나보고 하라는 소리였다. 선택지 따위는 개나 줘야 되는 상황이었다.
이 IT업계에 첫 발을 붙이고 의욕은 있지만 자신감이 마구마구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였기에 내겐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이사님 저 못하겠는데요. 해본 적도 없고.... 어쨌든 현장에서는 적용해야 하는데.... 막혔을 때 물어볼 사람도 없습니다!!!!"
'안해! 안한다고!! 하지 말라고 말해!!! 이 사람아 당신 급하다고 나에게 넘기지 마!!!'
"안 되는 게 어디있어 해봐~ 장비 오니깐 일단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이야기 하자 알.았.지?! 일단 내용은 올려놨어 거기 아키텍처랑 구성도 도 다 있으니깐 보고 테스트 한번 해봐~"
그리곤 돌아서 도망치듯 가버렸다..... 이 사람 사수가 나가있는 틈을 타 나에게 넘긴 것이 분명했다.
내 사수가 있더라면 아마 바로 딱 잘라 거절했을 것을..ㅠㅠ 내 팔자야...
그래 일단 보기라도 하고 내일 사수 오면 고자질해서 못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열었다. 열면 안 되었다. 그건 판도라 상자보다 더 무시무시한 그 무엇인가였다.
ㅅㅂ! ㅈㄷㄷ! 파일을 열어본 나는 이거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경종이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윈도우로 클러스터 구성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장비 리스트와 구성도를 확인한 나는 기겁하였다. 분명 전산센터 구축사업 중 한 꼭지만을 구축하는 일이었지만 그 규모가 나 혼자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
"이게 뭐여? 이걸 누가 넘겼다고?!"
다음날 해당 자료를 보고 내 사수는 불같이 화를 내였다. 'ㅇㅋ 계획 대로 되고 있어~'
"눼에~~! 최이사님이 주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장비도 도착한다고 합니다요~"
"아이씨 잠깐만 있어봐~ 최이사님 어디 갔어?"
엇 그러고 보니 최이사을 본 적이 없다. 설마 하는 불안감이 머릿속에 찾아왔다.
"오늘 출근 안 하신 듯한데요.....""와씨! 이 사람 너한테 일 넘기고 튄 거야?! 잠깐 있어봐 전무님 뵈고 올게~!"
'아싸 화이팅 입니다요!!!'
잠시 후...."ㅈ댔다 너 이거 해야겠다. 사장님 보고까지 끝나서 취소할 수 없다나 봐... 미안하다."엥?!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던 이야기였다. 내 시나리오는 점심에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고 화장실 두 번째 칸에서 끙끙 힘을 주며 상쾌해진 몸과 마음으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아주 멋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 일단 장비받고 나서 이야기 하시져..."
하지만 장비를 받고 나서 내 의욕은 더없이 올라갔다.(이상하게 전자제품만 보면 흥분된다. 그래서 용산을 못 가~)
"너 이거 할 수 있겠냐?"
흑.... 내 사수는 도와주고 싶어도 해당 구성 관련한 어떠한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식과 경험은 있어 해당 내용에 대한 구성방식이나 적용 방안등은 자세히 알려 주었어도 직접 구현하는 기술이 없는 사람이었다.(대신 다른 기술이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또한 다른 일정들이 빡빡하게 있는 우리 사수(이 사람 자기 생활이 없다)
'자 해보자 일단 하드웨어 구성은 서버 3대, 네트워크 스위치 2대, 스토리지 1대, 서버와 스토리지를 연결하는 SAN스위치 2대.. OS는 윈도우, 구성은 AD, 윈도우클러스터.... 여기 까지만 하면 되고 그 위에 미들웨어나 APP는 내가 구성을 완료 하면 다른 업체가 설치한다고 했으니까....나 할 수 있을까?'
자 무슨 말이지 하나도 못 알아먹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ㅠㅠ
내가 현장에서 지금까지 배우고 실행한 업무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대 생각해 보니깐 장비 설치는 누가 하냐고 안 물어봤을까? ㅠㅠ)
어찌 되었든 실력은 없고 자신감은 떨어질 때로 떨어졌있는 상태지만 아직 무언가 해보고 배우려는 열정만은 남아있었기에 학원에서 만든 자료와 사내보유 자료들을 보고 이틀이라는 밤을 새워 가며 여기저기 적용 해 마침내 구성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된거야 안되거야?'
내가 지금까지도 일하면서 느낀 점은 이눔무 구성들은 완료가 되었는지 안되었는지 혼자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다.
구성이 완료되면 친절하게 "네가 한 구성은 개똥이니 첨부터 다시햇!" 라 든지, "우와 용케 해냈네? 그래 이번만은 칭찬해줄께~우쭈쭈!" 라 든지 알려주는 구성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내 바로 밑 후임은 "과장님 이거 구성해 봤는데 잘된 거예요?" 라고 묻는다. (사실 나도 잘 몰라 인마!)
"저거는 적용했어? 이것도 적용했고? 그럼 요거는 했놓았고? 그럼 된 거야!"라고 알려 주는 형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아이템 하나 하나로 보면 이쁘다는 건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모자, 티셔츠, 바지, 양말, 신발을 사서 입고 이게 잘 어울러 져 이쁜지 안 이쁜지 옷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장비 하나하나에 설치를 완료해도 전체적인 구성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길은 없다.
본인의 경험을 늘리거나, 다음단계의 기술을 잘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에서 잘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일은 이미 경력자들이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개발실에서 아무리 가진 자료를 통해 혼자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절대 이게 어떠한 방식으로 잘된 거지? 아니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실패하였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장을 따라다니며 몸으로 부딪치면 배워야 한다.(자심감 하락은 어쩔 수 없는 1+1이다)
찜찜함을 가진 체 다가온 D-Day 일단 내가 할 수 있는대까지 해서 구성을 완료하였고(구성중 다음날부터 제발 뭐가 안되었다고 연락이 없었으면 하면서 몇 날 며칠을 걱정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사실 구성할 때도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도 없었고 현장과 테스트는 다르다는 걸 한 번 더 깨닫게 되어 좋은 경험이었다....는 개뿔 다신 안 해!(그러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네...ㅠㅠ)
쬐금 아주 쬐금 그때 일이 생각나면 그 사이트(고객사) 서비스는 잘되고 있는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있다.아마 유지보수 하는 업체에서 누가 이따구로 구성했다고 있는 욕 없는 욕 하고 있을 거다.
미안하다. 귀좀 안 가렵게 해 줘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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